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앙리 4세 (문단 편집) === 제8차 위그노 전쟁(세 앙리의 전쟁, 1587~1589) === 후계자 문제로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지만 앙리 3세는 위그노인 나바르 왕 헨리케 3세를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기즈 가문을 위시한 '''가톨릭 동맹'''(즉 신성동맹) 내에서도 가톨릭의 성직자였던 헨리케 3세의 숙부 샤를을 다음 왕위계승자로 내세우면서 헨리케 3세는 기즈 공작 앙리를 위시한 가톨릭 동맹과 대립했다.[* 내전에 관여하던 세 세력의 지도자의 이름이 모두 앙리[* 앙리 드 발루아 - 앙리 3세, 앙리 드 나바르 - 나바르 왕 헨리케 3세, 기즈 공작 앙리]였기에 이를 '''세 앙리의 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1587년 10월 20일 헨리케 3세는 8,000명의 국왕군을 이끌던 앙리 3세의 총신 안 드 주아이외즈 공작을 '''쿠트라 전투'''에서 격퇴했다. 그러다가 1588년 12월 23일 블루아에서 앙리 (1세) 드 기즈와 그의 동생인 [[추기경]] 루이 (2세) 드 기즈가 앙리 3세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전황은 헨리케 3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앙리 드 기즈의 죽음은 그와 그의 기즈 가문이 앙리 3세의 왕권을 노골조로 무시한 데서 비롯되었다. 당시 앙리 3세는 모후 카트린의 설득으로 위그노들의 자유권을 폐기하는 '''느무르 조약'''을 체결했으나 선포 이후 군중들의 환희에 답하지 않고 떠났기에 가톨릭의 경멸을 받기 시작했으며, 쿠트라 전투에서의 대패 이후에도 사치를 전혀 줄이지 않아 수도 파리의 시민들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1588년 5월 12일, 파리에서 앙리 드 기즈의 농간으로 보이는 시민 봉기(일명 '''바리케이드 사건''')가 일어나자 모후인 카트린이 앙리 드 기즈와 협상을 하는 동안 측근들을 데리고 파리를 탈출, 샤르트르로 피신했고, 같은해 7월 19일에는 앙리 3세가 루앙에서 기즈 가문을 위시한 가톨릭 동맹에 유리한 11개의 조항으로 된 '''연맹조약'''을 발표했는데 부르주, 오를레앙 등 4개의 도시를 가톨릭 동맹에게 제공하는 불합리한 내용이었다. 결국 1589년 1월 5일 앙리 3세의 정치적 충고자이면서 후원자였던 태후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사망하면서 암살당한 기즈 공작 앙리와 루이 드 기즈의 동생이었던 마옌느 공작 샤를를 비롯한 가톨릭 동맹에 의해 앙리 3세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프랑스의 대도시 대부분이 공개적으로 앙리 3세에게 적대감을 표했으며 삼부회마저 등을 돌렸고, 표면적으로나마 충성을 하던 파리의 대법원 또한 1월 16일 16인 위원회에 의해 해산되고, 가톨릭 동맹을 대변하는 새 대법원이 세워지면서 프랑스 전역의 고등법원마저 가톨릭 동맹편에 서는 등 모든 권력과 명예가 실추되자 앙리 3세는 그나마 손을 잡을 수 있는 존재가 위그노의 수장인 나바르 왕 헨리케 3세 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앙리 3세는 헨리케 3세와 손을 잡게 되었고, 1589년 4월 3일 두 사람의 앙리는 1년 기한의 공식적인 조약을 체결한 후 같은해 4월 29일에 각자 조약을 발표했다. 5월 8일 가톨릭 동맹군이 투르로 쳐들어왔으나 헨리케 3세가 이끌던 위그노군에 의해 앙리 3세가 구원을 받았다. 이후 두 왕은 함께 파리를 탈환하기 위해 2개월 동안 준비를 했고, 같은 해 7월말에 42,000명의 대병력을 이끌고 파리 성벽에 도달한 후 파리 서쪽 생-클루에 위치한 레츠 백작의 저택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허나 8월 1일 파리가 포위되는 와중에 브레앙 백작이 보낸 자라고 말한 [[가톨릭]] [[도미니코회]]의 [[수도자]]인 자크 클레맹이 앙리 3세에게 편지를 건내 그가 편지에 정신을 팔리는 사이, 자크 클레맹에게 치명상을 입게 되었고, 병상에서 문병을 온 헨리케 3세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것을 권하며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하고, 숨을 거두었다. 이로써 [[필리프 6세]]에 의해 개창된 지 261년만에 파란만장했던 [[발루아 왕조]]가 단절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